자오당이란 고려중기 계양도호부 부사의 관사에 백운거사 이규보가 붙인 이름으로 부평향교 북쪽 온수골 우편 언덕 위(계산동산 57-2, 현 배수지 부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곳에서 다량의 와편이 출토되기도 했다. 동방의 시호라고 불릴만큼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며 지인인 재규보(1168-1241) 일찍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무인 정권시대인지라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다가 최충헌에 의해 발탁되어 출세가도를 달려 문화시랑평장사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자오당이란 고려중기 계양도호부 부사의 관사에 백운거사 이규보가 붙인 이름으로 부평향교 북쪽 온수골 우편 언덕 위(계산동산 57-2, 현 배수지 부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곳에서 다량의 와편이 출토되기도 했다. 동방의 시호라고 불릴만큼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며 지인인 재규보(1168-1241) 일찍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무인 정권시대인지라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다가 최충헌에 의해 발탁되어 출세가도를 달려 문화시랑평장사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자오당이란 고려중기 계양도호부 부사의 관사에 백운거사 이규보가 붙인 이름으로 부평향교 북쪽 온수골 우편 언덕 위(계산동산 57-2, 현 배수지 부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곳에서 다량의 와편이 출토되기도 했다. 동방의 시호라고 불릴만큼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장가이며 지인인 재규보(1168-1241) 일찍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무인 정권시대인지라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다가 최충헌에 의해 발탁되어 출세가도를 달려 문화시랑평장사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