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은지 바로 옆에 돌로 대를 쌓고 중앙에 어사대광서정해중수(御射臺光緖丁亥重修)라고 새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예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종 24년(1887)에 증수하였다는 표지석만 남아있고 인조가 활을 쏘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욕은지와 더불어 기록에 의하면 인조보다는 부평에 왔던 분은 정조 한 분으로 효를 중요시하고 활쏘기를 즐겨했던 터라 정조 21년 (1797)김포 장능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지금의융릉)을 전배하기 위하여 부평을 지나갔는데 이때 점심 수라를 들고 휴식할 때 활을 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욕은지 바로 옆에 돌로 대를 쌓고 중앙에 어사대광서정해중수(御射臺光緖丁亥重修)라고 새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예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종 24년(1887)에 증수하였다는 표지석만 남아있고 인조가 활을 쏘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욕은지와 더불어 기록에 의하면 인조보다는 부평에 왔던 분은 정조 한 분으로 효를 중요시하고 활쏘기를 즐겨했던 터라 정조 21년 (1797)김포 장능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지금의융릉)을 전배하기 위하여 부평을 지나갔는데 이때 점심 수라를 들고 휴식할 때 활을 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욕은지 바로 옆에 돌로 대를 쌓고 중앙에 어사대광서정해중수(御射臺光緖丁亥重修)라고 새긴 장대석이 놓여있다. 예전에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고종 24년(1887)에 증수하였다는 표지석만 남아있고 인조가 활을 쏘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욕은지와 더불어 기록에 의하면 인조보다는 부평에 왔던 분은 정조 한 분으로 효를 중요시하고 활쏘기를 즐겨했던 터라 정조 21년 (1797)김포 장능을 거쳐 아버지 사도세자의 원(지금의융릉)을 전배하기 위하여 부평을 지나갔는데 이때 점심 수라를 들고 휴식할 때 활을 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